팀원이 회의실에서 침묵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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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나리

회의실에서 침묵이 만들어지는 이유

“이번 회의에서 꼭 말해야지.” 회의실로 들어가기 전, 당신은 다짐한다. 하지만 회의가 시작되면 다르다. 준비한 말은 목구멍에 걸린다. 회의가 끝나고 복도에서 동료를 만난다. “아까 그 안건, 사실 문제가 있는데…” 복도에서는 말하지만, 회의실에서는 침묵한다.

당신만 그런 게 아니다. 많은 조직에서 회의는 침묵의 공간이다. 중요한 문제일수록 더 조용해진다. 왜 그럴까? 왜 우리는 복도에서만 말하고, 정작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회의에서는 입을 다무는가?

침묵은 정말 두려움 때문인가?

전통적으로 조직학 연구는 침묵의 원인을 두 가지로 설명해왔다. 첫째, 두려움이다. 말했다가 불이익을 당할까 봐 입을 다문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무력감이다. 말해봤자 소용없다고 믿기 때문에 침묵한다. 이처럼 문제 제기가 무의미하거나 위험하다는 인식이 조직 전체에 퍼진 상태를 침묵의 분위기라고 말한다. 이는 권위적 경영과 중앙집중식 의사결정이 두려움과 무력감을 만든 결과다. 

그러나 두려움과 무력감이 모든 상황을 설명하지는 못했다. 특히 전문직 종사자들이 모인 조직, 예를 들어 대학이나 컨설팅펌처럼 독립적 사고와 발언이 권장되는 환경에서도 침묵은 만연하다. 발언이 권장되고, 구성원이 발언 능력을 갖춘 환경에서도 침묵이 지배적이라면, 그 이면에는 두려움과 무력감 이외의 다른 동력이 작동하는 것은 아닐까?

침묵은 왜 발생하는가?

시드니대 경영대학의 Szkudlarek 과 Alvesson 은 이 현상을 체계적으로 연구했다. 이들은 호주의 한 경영대학에서 18명의 종신 교수를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직업 안정성이 보장되고, 노조와 같은 강력한 안전망을 갖춘 전문가들이었다. 이들은 최대 20년, 최소 3년 이상 재직한 정교수와 부교수로, 발언 능력과 권한을 충분히 갖춘 사람들이었지만, 침묵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만약 두려움과 무력감이 침묵의 주된 원인이라면, 이들은 가장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집단이어야 했다. 침묵하는 원인을 구조적 요인, 문화적 요인, 개인적 동기를 모두 분석한 결과, 침묵은 이 세 가지가 복잡하게 얽혀 상호작용하며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발견 1: 구조적 요인 – 위계와 관료주의가 만드는 거리

첫 번째는 구조의 문제다. 조직이 커지면서 학생도, 교수도, 행정 절차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위계는 높아지고 관료주의는 심해졌다. 한 교수는 이렇게 토로했다. “과거에는 비용이 학자들에게 전가되었다. 우리는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고, 더 많은 관료적 업무와 행정 업무를 해야 한다. 우리는 덜 신뢰받고, 그래서 더 많은 시스템과 행정가들이 우리가 올바른 일을 하는지, 모든 체크박스를 체크하는지 확인한다.”

또 다른 교수는 중앙집중화의 역설을 지적했다. “시스템이 중앙집중화되어 있어서, 무엇에 대해 누구에게 말해야 할지조차 모르겠다.” 조직이 커질수록 의사결정권자는 멀어진다. 개인은 점점 더 작아진다.

위계와 관료주의는 불만의 원인이 되고, 사람들은 이것을 침묵의 이유로도 사용한다. “저 복잡한 구조에서 내가 뭘 말해봤자…” 사람들이 실제로 시도해본 경험이 없어도 이런 믿음을 사실처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추측이 침묵을 만들고, 침묵은 다시 구조를 강화한다.

발견 2: 문화적 요인 – 불평은 하되 행동은 하지 않는 문화

두 번째는 문화의 문제다. 연구진은 세 가지 문화적 특징을 발견했다.

첫째, 공동체가 사라졌다. “우리는 모두 각자 사무실에 앉아 자기 일만 한다. 상호작용이 거의 없다.” 라고 응답했다.공동체 의식이 있다면 어떨까? “좋아, 우리 모두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자. 완벽하진 않지만 더 큰 선을 위해 함께 가자”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문화는 없다.

둘째, 불평만 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비공식 자리에서는 누구나 강하게 불만을 쏟아낸다. 하지만 정작 회의에서는 입을 다문다. 불평과 뒷담화가 있다. 사람들은 그것 자체를 수행적 행위로 본다. 그들이 ‘무언가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냥 불평일 뿐 아무 변화도 만들지 못한다.

왜 불평은 실제 발언으로 전환되지 않을까? 불평은 안전하다. 비판은 하지만 책임은 지지 않아도 된다. 한 교수는 “사람들은 그 타자화 작업을 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것이 그들을 변명하고, 사물이 있는 방식을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불평의 문화는 매우 편안한 자리다”라고 지적했다.

셋째, 두려움의 신화가 떠돈다. 그런데 이 두려움은 실제 경험보다는 전설에 가깝다. “과거에 몇몇 학장들이 공개 회의에서 리더십에게 불편한 문제를 제기하면, 나중에 전화가 와서 많은 욕설을 하며 ‘감히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했다는 것을 안다.”라고 인터뷰했다. 그러나 정작 그 일을 겪은 사람은 대부분 떠났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더라”는 신화화된 기억으로 작동하며, 사람들은 실재보다 상상의 위험에 더 크게 반응한다.

발견 3: 개인적 동기 – 침묵은 두려움이 아니라 편의의 선택

세 번째는 개인적 동기다. 인터뷰 초반에는 누구나 구조와 문화 탓을 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파고들자, 인터뷰 대상자들은 개인적 이유를 드러냈다.

기회주의 – “내 성과가 먼저다” 

학계는 개인 성과로 평가받는다. 논문 편수, 인용 지수, 승진. 조직 개선은 그 어디에도 점수가 안 붙는다. 한 교수는 솔직하게 말했다. “학계는 실제로 매우 개인주의적이다. 우리는 혼자 일하는 데 익숙하다. 다른 연구자와의 연결은 있지만, 결국 우리가 가진 자유와 조직으로부터의 분리는… 우리는 다른 존재다.”

또 다른 교수는 “승진이 본질적으로 내 목표다. 리더십과 참여로도 평가받지만, 그것은 내 걱정 중 가장 작은 부분이다.” 조직 문제? 내 논문이 더 중요하다. 개인 성과 중심의 평가 시스템이 공동의 목소리를 약화시킨 것이다.

편의 – “귀찮다”

회의에서 발언하고, 논쟁하고, 변화를 만드는 일은 시간과 에너지를 잡아먹는다. “나는 단순한 삶을 좋아한다. 내가 기분 나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30분 동안 토론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으며, 또 다른 교수는 “나는 그런 싸움을 하고 싶지 않다. 내게는 더 중요한 다른 일들이 많고, 하루에 X시간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복도에서 5분 불평하는 건 쉽다. 하지만 회의에서 30분 논쟁하는 건 다른 문제다. 침묵은 에너지 절약의 선택이다.

무능력 –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다”

일부는 발언 자체를 특별한 능력으로 여긴다. 한 교수는 “모든 사람이 리더이거나 리더가 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정상적인 것은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발언을 리더의 역할로만 규정하며 스스로 팔로워로 한정한다. 이런 인식은 학습된 무력감의 결과이기도 하다.

분리 – “조직은 나와 상관없다”

조직과 정서적으로 거리를 두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는 과거에 ‘우리 대학은 훌륭하고 나는 그것을 지지할 것이다’였다. 그런데 지금은 ‘나는 훌륭하고 우리 대학은 나를 가능하게 해야 한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래서 왜 내가 그들을 밀어줘야 하나?’가 되었다.” 조직이 나를 지원하지 않는데, 왜 내가 조직을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하나? 이 냉소는 조직과 자신을 정서적으로 분리하며 침묵을 정당화한다.

결국, 침묵은 두려움보다 편의, 무관심, 자기합리화의 결과에 가깝게 나타는 행동이다.

침묵이 침묵을 만드는 순환 고리

조직의 구조, 문화, 개인 동기는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 서로 얽혀서 침묵을 강화하는 것이다. 두려움과 무력감은 어디서 왔을까? 실제 경험보다는 스스로 만들어낸 “자유롭게 떠다니는 구성물”에 가깝다.
두려움은 “옛날에 그런 일이 있었다더라”는 소문에서, “말하면 찍힐지도 몰라”는 상상에서 나온다. 무력감도 마찬가지다. 실제로 시도해본 적은 없다. 그냥 “저 복잡한 조직에서 내가 뭘 바꿔?”라는 막연한 믿음이다. 그리고 회의는 이 침묵을 의례화하는 장이 된다. 연구진의 표현을 빌리면, 회의는 침묵과 수동성을 드러내고 강화하는 의식이 된다. 여기서 조직의 행동 규범이 확립되고 실행된다.

구성원이 둘러 앉은 회의실을 떠올려보자. 누군가 발언하면? 모든 시선이 그에게 쏠린다. 그 노출감, 그 불편함 속에서 침묵은 가장 합리적이고 안전한 선택으로 느껴진다. 이렇게 침묵은 정상적 반응이 되며, 침묵은 더 이상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침묵은 다음 세대로 전승된다. 신입이 회의에 처음 참석한다. 선배들은 모두 조용하다. 그는 배운다.

“여기서는 말하지 않는 게 정상이구나.” 어떤 경우에는 선배가 명시적으로 가르친다. 한 교수는 이렇게 고백했다. “사람들은 ‘그냥 조용히 해. 목소리 내지 마. 여기서는 아무 말도 하지 마. 스스로를 표적으로 만들지 마’라고 말하곤 했다.” 이렇게 침묵은 조직 규범으로 내면화된다. 개인적 습관이 아닌 사회적으로 학습되고 자연화된 결과다.

순환은 계속되고, 개인들은 침묵을 정당화하는 언어를 개발한다. “어차피 소용없어” “내 일이 더 중요해”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야.” 위계가 높아질수록 사람들은 침묵을 선택하고, 침묵이 반복될수록 침묵이 정상이라는 문화가 굳어진다. 그 문화는 다시 개인의 선택을 정당화하는 것으로 반복된다. 침묵이 침묵을 만든다.

그렇다면 조직은 어떻게 이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까?

첫째, 회의를 목소리 활성화 장치로 재설계해야 한다. 회의는 다양한 목소리를 건설적으로 모으고 종합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춰야 한다. 조직의 리더는 회의 스킬을 익히고, 발언의 순환 구조, 소그룹 토론, 아이디어 확산에 도움이 되는 기법으로 참여를 촉진하고 침묵의 규범을 약화시켜야 한다.

둘째, 목소리를 인정하고 보상해야 한다. 누가 말했는가보다 그 말이 어떤 변화를 만들었는가에 주목해야 한다. 발언 행동이 개인의 이익과 배치되지 않는다는 신호를 조직이 보내야 한다.

셋째, 리더는 침묵을 관찰하고, 그 이유를 탐구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구성원의 침묵을 넘기는 것이 아니라, 왜 아무도 말하지 않을까?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라는 질문이 변화의 출발점이 된다.

결국 조직의 침묵은 구조나 문화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매 순간 구성원과 리더가 내리는 선택의 누적이다. 침묵은 편하다. 하지만 그 편함이 쌓이면 조직은 변화를 멈춘다. 발언은 불편하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 쌓이면 조직은 진화한다. 복도의 불평은 변화를 만들지 못한다. 회의실의 한 문장이 조직을 바꾼다. 침묵이 침묵을 만들 듯, 발언도 발언을 만든다.
당신의 다음 회의는 어떤 선택이 될 것인가?